상처 입은 전이 대상과 위로할 줄 모르는 현대 사회
이 글의 출발점은 2009년 캐나다 핼리팩스에 위치한 마운트 세인트 빈센트 대학교(Mount Saint Vincent University)에서 아동학 교수로 재직 중인 도나 바르가(Donna Varga)의 강연이다. 제목은 “Teddy Bear 문화: 아동의 순수성과 성인의 구원 욕망”(Teddy Bear Culture: Childhood Innocence and the Desire for Adult Redemption).
바르가는 교육학과 아동문화, 그리고 일상 속 사물과 미디어에 나타나는 상징적 서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녀는 이 강연에서 Teddy Bear가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시간과 함께 감정과 향수를 투영하는 강력한 상징으로 진화해 왔음을 분석했다. 그 안에는 현대인이 품고 있는 구원과 위로에 대한 깊은 욕망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Teddy Bear’는 무엇으로 남아 있는가?
그 Teddy Bear를 ‘죽인’ 것은 과연 누구인가?
최근 며칠 사이 지역 언론과 전국 미디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예술인가? 이런 충격적인 표현이 고속도로 출구 근처에 전시될 필요가 있었는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우리는 한 걸음 물러나, 20세기 서구 문화에서 두 마리의 곰이 어떻게 상징적인 서사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Teddy Bear’다. 이 상징은 1902년 미국 미시시피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에서 비롯된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는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간의 국경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으며, 그 틈을 타 현지 사냥꾼들이 준비한 곰 사냥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사냥을 주도한 인물은 흑인 노예 출신이자 남북전쟁 당시 남군에서 하인 겸 안내병으로 복무했던 홀트 콜리어(Holt Collier, 1848–1936)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국 남부는 여전히 인종 차별이 뿌리 깊은 사회였다. 그러나 콜리어는 탁월한 사냥 실력 덕분에 점차 명성과 존경을 얻게 되었고, 이는 흑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억눌렀던 사회적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특별한 성취였다. 그는 Teddy Bear라는 20세기 아동 문화의 신화를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인 인물이었지만, 오랫동안 역사의 무대 뒤편에 가려져 있었다.
바로 이 침묵 속에, 콜리어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그가 만들어낸 신화는 전 세계 아이들의 품에 안겨 위로와 보호의 상징이 되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일구어낸 세계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잊혀져야 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Teddy Bear를 이야기하며 반드시 되짚어야 할 첫 번째 서사이다.

콜리어는 미시시피 델타 지역의 늪지대에 숨어 있는 위험과 은밀한 경로, 그리고 야생의 본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동시대 어떤 사냥꾼보다 많은 곰을 사냥했으며, 미국 신화 속 전설적인 인물인 대니얼 분(Daniel Boone, 1734–1820)과 데이비 크로켓(Davy Crockett, 1786–1836)보다도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이 두 인물의 이름을 딴 명망 높은 ‘분 앤 크로켓 클럽(Boone and Crockett Club)’은 바로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창설한 조직으로, 올바른 사냥 윤리를 확산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콜리어는 곰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루스벨트를 미리 배치해두고, 스스로는 그 곰을 쫓고 지치게 만들어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다. 그의 계산은 정확했다. 곰은 정말로 루스벨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막상 도착했을 때 대통령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나 기지로 돌아간 상태였다. 콜리어는 사냥을 포기하지 않고 홀로 뒤쫓았다. 결국 그는 곰을 늪에 빠뜨리고, 소총 개머리판으로 곰을 기절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절한 곰은 나무에 묶여 루스벨트에게 ‘마무리 일격’을 하도록 제안되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자신이 세운 윤리 기준—Boone and Crockett Club의 정신—에 따라,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의 동물을 쏘는 것은 명예롭지 않다고 판단하고 사양했다. 대신 칼로 끝내라고 지시했는데, 이를 맡은 인물이 서툴러 곰은 오히려 오랜 시간 고통을 겪었다. 결국 그 고통을 끝낸 것은 다름 아닌 콜리어였다.
이 사건은 더 큰 긴장을 보여준다. 자연을 직접 경험하고 살아온 이들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콜리어와 같은 이들의 능력—과, 상징적인 권위만으로 자연을 통제하려는 백인 권력의 간극, 바로 그것이다. 루스벨트가 단 한 번 자리를 비움으로써, 콜리어가 세심하게 구성한 ‘보이지 않는 연출’은 무효화된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등장하는 것이 바로 Teddy Bear의 탄생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콜리어의 기술과 헌신이 아니라, 대통령의 ‘자비로운’ 결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억된다. 매복을 이끈 손은 역사의 장면에서 사라지고, ‘쏘지 않은 남자’의 전설만이 각인된다.

이 사건은 곧 만화가 클리퍼드 베리먼(Clifford Berryman, 1869–1949)에 의해 상징적 이미지로 변모했다. 그는 1902년 11월 16일자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에 “미시시피에서 경계를 긋다(Drawing the Line in Mississippi)”라는 제목의 만평을 게재했다. 만평 속에서 곰은 사슬에 묶인 작고 귀여운 새끼로 그려졌고, 루스벨트는 그런 곰을 향해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영웅적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단순한 선으로 구성된 이 장면은 극적인 현실의 잔혹함을 도덕적 미담으로 가공하여, 연민과 정의의 상징처럼 포장했다.
이 이미지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대중은 즉각 반응했고, 이 만평은 각종 매체에서 재해석되고 반복되며 루스벨트의 행동을 민족적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언론은 이를 신화로 만들었고, Teddy Bear의 탄생은 그러한 집단적 신화화 과정의 상업적 부산물 중 첫 번째에 불과했다. 그렇게 탄생한 Teddy Bear는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미국 아동기의 정서적 원형(archetype)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인조 모피 속에는 여전히 모순이 감춰져 있었다. 그것은 본래 폭력적이었던 행위를 연민의 제스처로 치장한 상징이었다.
한편, 이에 대조되는 또 하나의 곰 이야기, 바로 Winnie-the-Pooh가 있다. 이 곰은 실질적인 사랑과 일상의 행위에서 비롯된 존재였다.
1914년, 캐나다의 젊은 수의사 해리 콜번(Harry Colebourn, 1887–1947)은 왕립 캐나다 육군 수의부대 소속으로 유럽 전선에 배치되던 중이었다. 그가 온타리오 주 화이트 리버 기차역에 잠시 정차했을 때, 한 밀렵꾼이 팔고 있던 새끼 흑곰을 보게 된다. 그는 20달러—오늘날 약 370유로에 해당하는 금액—를 주고 곰을 사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도시 위니펙(Winnipeg)의 이름을 따서 그 곰을 “Winnie”라고 부른다.
Winnie는 이후 캐나다 제2보병여단의 비공식 마스코트가 되어 콜번과 함께 영국까지 이동한다. 하지만 부대가 프랑스 전선으로 이동하게 되자, 콜번은 곰을 런던 동물원에 맡기게 된다. 그것이 전쟁 중 Winnie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Winnie는 곧 런던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동물이 되었고, 그 아이들 중에는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Christopher Robin Milne)이라는 소년도 있었다. 그는 Winnie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고, 그의 아버지 A.A. 밀른(A.A. Milne, 1882–1956)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푸우(Pooh)*라는 독특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 세계는 시간의 흐름과 무관한 시적 공간이었고, 그 안에는 각기 다른 감정의 결을 가진 상상 속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것은 곧 어린 시절의 내면을 섬세하게 반영한 상징적 우화였다.

두 곰은 모두 하나의 전환점을 상징한다. 자연에서 문화로, 야생에서 상징으로, 현실에서 동화로. 하지만 Teddy Bear는 공적 사건에서 시작해 사적으로 귀결된다(장난감이 됨). 반면 Winnie는 사적인 행위에서 출발해 보편적 서사로 확장된다(이야기가 됨).
하나는 폭력의 구원을, 다른 하나는 보호와 애정을 말한다.
A12 고속도로(베르실리아 출구) 인근에 한 마리의 작은 곰이 쓰러져 있다. 그것은 장난감 같은 곰이 아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몸체는 더 이상 따뜻함을 전달하지 않으며, 오히려 폭력의 잔상을 남긴다. 가슴 한가운데, 심장 부위에는 칼날이 깊숙이 꽂혀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작가 레이첼 리 호브나니안(Rachel Lee Hovnanian)의 새로운 대형 조각으로, 피에트라산타 시에 설치되었으며, 도발적인 제목이 붙어 있다: “Poor Teddy in Repose”.
그리고 이미 논쟁은 시작되었다. 작가의 의도는 명확하다. 그녀는 유년기의 페티시였던 인형, 그중에서도 Teddy Bear라는 존재가 더 이상 아이들의 곁에 없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이제 그것은 침대 밑에 버려지고 잊힌 존재다. 그 자리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앱과 푸른빛의 디지털 신호로 채워진 새로운 종교의 제단이 차지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곰 인형을 품에 안고 잠들지 않는다. 그 대신 손에 쥔 것은 전자기기다.
하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시각적 충격과 윤리적 메시지를 넘어서, 이 작품은 훨씬 더 깊은 심층적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정신분석학의 틀 안에서 조명될 때 비로소 온전한 무게를 갖는다. 특히 1951년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이 발표한 논문 *“전이 대상과 전이 현상 – 최초의 ‘내 것이 아닌’ 소유에 대한 연구”*에서 제시한 ‘전이 대상(transitional object)’ 개념이 핵심이다.
위니컷에 따르면, 전이 대상은 유아가 어머니와의 일체감에서 벗어나 자아의 독립성을 향해 나아갈 때 처음으로 선택하는 ‘경계의 대상’이다. 종종 그것은 담요, 인형, 혹은 곰 인형과 같은 물건이다.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부적이며, 어머니의 냄새를 품고, 눈물을 흡수하며, 사랑과 분노의 대상이지만 절대 복수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 세계와 외부 현실 사이에 중립 지대를 구축해주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물건 자체가 아니라, 아이가 그 대상에 감정을 실어줄 때 비로소 생기는 역할이다.”

작품 **”Poor Teddy in Repose“**는 단순히 인형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적 상상력에 바치는 진혼곡이다. 가슴을 꿰뚫는 칼날은 문화적 단절의 상징이다.
무언가가 부서졌다.
포스트 디지털 사회는 점차적으로 전이 대상들을 차가운 매개 도구들—감정을 담지 못하는 장치들—로 대체해왔다.
오늘날의 아이는 더 이상 스스로 선택하고, 사랑하고, 정서적 에너지를 부여한 대상을 품에 안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로부터 ‘지정된’ 물건을 안는다. 교육적 대리 혹은 부재의 대체물로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이 대상 2.0이다.
오락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감정을 담아낼 그릇은 되지 못하는 기기들.
스마트폰은 모든 것을 지배하며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이의 시선을 끌지만, 어떤 정서적 투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냄새도 없고, 나이 들지도 않으며, 사용자의 흔적을 담지 않는다.
사랑할 수 없는 대상—단지 ‘사용’만 가능한 대상이다.
인형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태블릿, 아기용 커버로 감싸진 그것은 전통적인 인형의 온기를 흉내 내려 하지만, 결국은 기계일 뿐이다. 디지털 인형이나 타마고치 같은 상호작용형 아바타는 명령에 반응하지만, 아이가 ‘선택’한 존재는 아니다. 그것들은 선택된 존재가 아니라 ‘생산된’ 물건이다.
음성 비서—알렉사, 시리—는 말을 걸지만 위로하지 못한다. 포용하지도, 감정을 돌려주지도 않는다.
그 상호작용은 기능적일 뿐, 정서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제는 소셜 장난감: 이모지, 좋아요, 릴스.
공유되지만 결코 친밀하지 않은, 액체 같은 관계. 아이는 그 안에 숨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노출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진정한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퍼포먼스 속에서 소멸된다.
이러한 장치들은 전이되지 않는다.
감정의 자립성을 향해 아이를 이끌지도 않고, 마음의 은신처를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차갑고, 복제 가능하며, 언제든지 업데이트된다.
그렇기에 조각 작품 **”Poor Teddy in Repose”**는 단지 아이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어른의 상처를 마주하게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위로할 줄 모른다.
왜냐하면 더 이상 상징화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봄(care)**을 **연결(connection)**로,
**존재(presence)**를 **알림(notification)**으로 착각해버렸다.
아마 그래서 이 작품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신의 곰 인형을 갖지 못하는 어른,
그래서 곰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른.
그렇기에 그 가슴 속의 칼날은 단지 예술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진단이다.
전이 대상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하는 세계—
그것은 성장하는 법을 잊어버린 세계다.
반영하고 있으며, 번역 과정에서 언어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